문화재청, '조선왕릉 봉분 및 능침지반 연구' 보고서 발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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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(본부장 정성조)는 세계유산 조선왕릉 40개소 61기의 봉분제도와 능침지반의 원형을 밝히기 위해 산릉의궤와 조선왕조실록 등 고문헌을 분석하고, 3차원 입력(3D 스캔)과 현장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'조선왕릉 봉분 및 능침지반 연구' 보고서를 발간했다.
궁능유적본부는 이번 보고서에 봉분의 크기 및 높이, 봉분 간격, 위요석물 등의 시대적 변화양상에 대한 내용과 조선 시대 봉분 정비사례 및 과거의 발굴과 수리기록 등을 분석해 도출한 봉분의 붕괴 원인과 개선방안을 함께 담았다.
먼저, 봉분의 경우 조선 초기 왕릉의 지하 현궁은 대형석재로 넓은 석실을 만들었기 때문에 봉분의 지름도 32∼35자(약 9,856~10,780mm) 사이로 컸으나, 15세기 후반 이후로는 현궁을 대형석재 대신 회격으로 조성하기 시작해 점차 봉분의 지름이 줄어들었으며, 17세기 후반부터는 합장릉을 제외한 단릉 및 쌍릉, 삼연릉의 경우 봉분의 좌우지름과 봉분 사이 간격을 조절하면서 봉분 지름이 25자(약 7,700mm)까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 등 시대 흐름에 따라 봉분 규모가 축소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.
또한 현장조사 결과, 조선왕릉은 현재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관리돼 오면서 봉분 주위의 석물에 따라 봉분의 지름이 변화하는 것을 확인했다.
▲병풍사대석을 갖춘 왕릉은 비교적 조성 당시의 봉분제도에 부합하나 봉분높이가 높아졌고 ▲난간석만 갖춘 왕릉은 봉분의 지름은 넓어지고 높이는 낮아졌으며 ▲봉분의 둘레와 지름을 지탱해줄 위요석물이 없는 왕릉의 경우는 봉분의 하부지름은 넓어지고, 높이는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.
이외에도 ▲후대에 추존되거나 왕실에서 입지를 다지지 못한 왕과 왕후의 무덤은 조선 시대에서부터 관리가 소홀했다는 점 등 흥미로운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.
또한 능침지반의 경우 조선 초기에는 봉분 사방으로 미세한 경사면을 조성하고 곡장 주변으로 배수로·배수구·배수홈 등을 설치했으나, 조선 후기로 갈수록 후면에서 전면으로, 초계의 중심에서 양 끝이 낮아지도록 경사면을 적극적으로 조성해 점점 발달한 배수체계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밝혀냈다.
마지막으로, 이와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역대 왕릉별로 향후 봉분 및 능침지반 정비를 위한 봉분의 기준제도와 능침지반의 검측 수치 및 정비 방향도 보고서에 담았다.
보고서는 관심 있는 모든 국민이 쉽게 열람하고, 학술연구에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문화재청 누리집에 공개한다.
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이번 보고서를 향후 봉분 및 능침지반 관리방안 및 정비계획 수립의 근거자료로 활용해 세계유산 조선왕릉의 체계적인 보존·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.